견고하고 유연하게

2020.10.08 - 10.28
catalogs

김주현, 박성민, 정현두




“공간과 덩어리와 숲. 형태는 모호하고 윤곽은 불분명하고 지표성은 상실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놓일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막막함. 그 막막함으로 들어서서 시간을 보내면 몸의 감각과 선택의 호흡만이 남는다. 최초의 감정이나 의도는 희미해지고 정리된 문장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렴풋한 확신을 뒤로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좋은 막막함이다.” (메모)

전시는 추상적이고 불확정적인 이미지로부터 출발하여 질료에 고유의 질서를 부여하는 신체행위를 거쳐 평면 또는 입체로 귀결된 결과물을 선보인다. 의도적으로 여러 번 겹치고 지우고 부수고 붙이는 과정은 과정 그 자체가 어떤 모호함과 명료함 사이에서의 긴장관계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반복을 거듭하며 연작을 만들어내고 변화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렇게 전시는 단 한 점의 작업이 아닌, 작업과 그 다음 작업 사이 일련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에 더 집중한다.

김주현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숲길 위에서 감각한 것들의 기억을 작업실로 가져온다. 외부세계와 화가 본인이 맺는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은 색이 되어 눕혀진 캔버스 위로 던져지고, 수평 상태에서 물과 함께 뒤섞이며 텁텁한 흔적을 이룬다. 얇은 물감층은 얹히는 순간마다 겹겹이 쌓인 직전의 흔적들을 하나로 통일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화는 내부의 정경(情景)이 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온 시간 축은 평면이 되어 전시장에 놓인다.

박성민의 조각은 볼륨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경계면은 파괴되고 정면으로 돌출된 만큼 내부는 들어가며 음영을 드리운다. 소조는 붙이고 떼어내고 부수고 다시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바이스 위에서 완성된다. 집산하는 촉각적인 덩어리이자 공간과 같은 작업들은 양가적인 요소사이에서 진동하며 전시장을 점유한다.

정현두의 회화는 자신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생각과 표현을 기록한 결과이다. 기록의 과정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며, 지우고 가공하는 ‘그리기’들이 교차 반복된다. 이렇게 화면에 중첩된 물감의 흔적은 어떤 생각의 존재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수수께끼의 문장처럼 보인다. 그가 다루는 회화적 기호들을 관계 지으며 하나의 기호가 다른 기호를 지우는, 가변적인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박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