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aoting Matters
2024.05.26-01.16
case seoul
서문: 류민지
김진유, 류민지, 정현두
2024.05.26-01.16
case seoul
서문: 류민지
김진유, 류민지, 정현두
Floating matters
수영을 배우다 보면 물잡기라는 것을)한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발차기를 통해 추진력을 얻고 몸에 힘을 빼는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수영을배울수록 이 물잡기란 것을 잘해줘야 앞으로 쑥쑥 나아갈 수 있다. 물잡기란 팔로 물을 끌어당기고 미는 기술로 손바닥보다 팔 전체로 물을 무겁게 당겨줘야 한다. 똑같이 앞에서 뒤로 팔을 움직여 물을 휘저을 뿐인데, 처음엔 아무리 해도 가볍게 물이 팔을 지나치는 느낌이지만 물을 잡으려고 계속 노력하다보면 묵직한 물의 무게감이 팔에 느껴진다. 나아가기 위해 팔을 휘두르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처음과 달리 어느 순간 내 몸의 어느 부분이 순간이나마 물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업을 지속하는 일은 가끔 부유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지만 명확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물을 잡고 싶어하는 일과 닮아 있으며 물을 잡는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잡으려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몸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다가도 어떤 때는 그저 흐름을 타고 부유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저 바다 건너 보이는 섬에 닿기 위해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일이라면, 바다 위에는 만들어진 길이 없기에 우리는 당연히 방향을 잃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옳다고 말하기 힘든 방향으로 우리가 간다 해도 결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헤엄치기 보다 부유하고 있는 것에 가깝더라도, 처음 바라본 섬이 아닌 내가 떠 있는 물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나는 바다에 빠져서 헤메고 있다.’라는 문장을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정현두의 작업이고 ‘바다’는 류민지의 작업이며 ‘헤메고 있다’는 김진유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세명의 작가 모두 회화를 매체로 삼지만 나아가는 방식과 목표 지점은 각기 다르다. 나아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형식의 차이는 같은 매체 안에서도 다른 성격을 가진 작업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작업은 작가의 작업실에선 작가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과정과 결과물로써 작가에게 관찰 당하는 객체이다가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주체로 행동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작업이 전시장에서 가지는 자율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작업에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작업 간의 새로운 관계성이 생겨나고 각각의 작업이 나아가는 방식이 더 선명하게 보여지는 순간을 기대해 보았다.
전시명 ‘Floating)matters’와 가장 긴밀하게 얽혀 있는 김진유의 작업은 전시에 서사를 부여한다. 바닷가와 가까이)사는 작가는 종종 바다에 갈 때 마다 마주치는 파도에 쓸려온 부유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의 파편이자 버려진 일부인 부유물을 보고 작가는 누군가의 잘려나간 신체 일부를 떠올리고 버려진 페트병을 펴서 만든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위에 새겨 넣거나 회화의 소재로 삼는다. 딱딱한 플라스틱은 열을 통해 물결과 닮은 형태로 변형되고 투명함을 잃으며 부유물의 형상을 담아낸다. 이것들은 마치 예기치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 온 듯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바닷가의 사물을 회화의 소재로 삼고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억과 상상력으로 그려진 회화 작업과 함께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적 장치로 전시장에 자리잡고 있다.
은유적 장치로 가득한 김진유의 작업과 달리, 류민지의 작업에선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나치는 일상 속 이미지가 새롭게 읽힐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을 연구하는 류민지는 이번 전시에서 어둠에 쌓인 바닷가와 각기 다른 형태의 가지가 얽힌 순간의 풍경을 선보인다. 이 두 그림 모두 해변과 수면, 얇은 가지와 거친 잎이 난 가지가 만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며 이러한 두 경계가 맞붙는 순간에 대한 심상은 재현적 이미지 사이에 들어간 추상적 형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리기의 방식을 달리 하며 진행되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대한 탐구이자 대상을 재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리는 행위가 구동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이러한 장치와 배경을 뒤로 하고, 정현두의 작업은 전시장 중간에 우뚝 서 있다. 붓질 자체가 삶의 감각을 실체화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는 그의 작업은 감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태어나는 작업의 특성으로 인해 종종 인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높이 150cm 바디스케일의 그림 두 점이 앞 뒤로 맞붙어 있는 작업을 선보인다. 최근 그림의 가로 폭을 좁히며 얇은 비율을 이용해 이미지 사이의 유기성을 실험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그림을 인물처럼 보이게 연출한다. 이번 전시에 맞춰 제작된 그의 회화 두 점 모두 류민지와 김진유의 작업물에서 영감을 받고 진행된 작업으로 이는 사람이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다는 점에서 인물과의 유사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앞뒤로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면적 형태로 자신의 다른 얼굴을 등 뒤로 숨길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그의 작업은 두 점이 결합된 하나로 전시장 앞쪽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이렇게 세명의 작업은 서로에게 누군가가 되고 어디가 되고 무엇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나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영을 배우다 보면 물잡기라는 것을)한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발차기를 통해 추진력을 얻고 몸에 힘을 빼는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수영을배울수록 이 물잡기란 것을 잘해줘야 앞으로 쑥쑥 나아갈 수 있다. 물잡기란 팔로 물을 끌어당기고 미는 기술로 손바닥보다 팔 전체로 물을 무겁게 당겨줘야 한다. 똑같이 앞에서 뒤로 팔을 움직여 물을 휘저을 뿐인데, 처음엔 아무리 해도 가볍게 물이 팔을 지나치는 느낌이지만 물을 잡으려고 계속 노력하다보면 묵직한 물의 무게감이 팔에 느껴진다. 나아가기 위해 팔을 휘두르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처음과 달리 어느 순간 내 몸의 어느 부분이 순간이나마 물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업을 지속하는 일은 가끔 부유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지만 명확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물을 잡고 싶어하는 일과 닮아 있으며 물을 잡는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잡으려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몸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다가도 어떤 때는 그저 흐름을 타고 부유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저 바다 건너 보이는 섬에 닿기 위해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일이라면, 바다 위에는 만들어진 길이 없기에 우리는 당연히 방향을 잃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옳다고 말하기 힘든 방향으로 우리가 간다 해도 결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헤엄치기 보다 부유하고 있는 것에 가깝더라도, 처음 바라본 섬이 아닌 내가 떠 있는 물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나는 바다에 빠져서 헤메고 있다.’라는 문장을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정현두의 작업이고 ‘바다’는 류민지의 작업이며 ‘헤메고 있다’는 김진유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세명의 작가 모두 회화를 매체로 삼지만 나아가는 방식과 목표 지점은 각기 다르다. 나아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형식의 차이는 같은 매체 안에서도 다른 성격을 가진 작업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작업은 작가의 작업실에선 작가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과정과 결과물로써 작가에게 관찰 당하는 객체이다가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주체로 행동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작업이 전시장에서 가지는 자율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작업에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작업 간의 새로운 관계성이 생겨나고 각각의 작업이 나아가는 방식이 더 선명하게 보여지는 순간을 기대해 보았다.
전시명 ‘Floating)matters’와 가장 긴밀하게 얽혀 있는 김진유의 작업은 전시에 서사를 부여한다. 바닷가와 가까이)사는 작가는 종종 바다에 갈 때 마다 마주치는 파도에 쓸려온 부유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의 파편이자 버려진 일부인 부유물을 보고 작가는 누군가의 잘려나간 신체 일부를 떠올리고 버려진 페트병을 펴서 만든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위에 새겨 넣거나 회화의 소재로 삼는다. 딱딱한 플라스틱은 열을 통해 물결과 닮은 형태로 변형되고 투명함을 잃으며 부유물의 형상을 담아낸다. 이것들은 마치 예기치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 온 듯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바닷가의 사물을 회화의 소재로 삼고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억과 상상력으로 그려진 회화 작업과 함께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적 장치로 전시장에 자리잡고 있다.
은유적 장치로 가득한 김진유의 작업과 달리, 류민지의 작업에선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나치는 일상 속 이미지가 새롭게 읽힐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을 연구하는 류민지는 이번 전시에서 어둠에 쌓인 바닷가와 각기 다른 형태의 가지가 얽힌 순간의 풍경을 선보인다. 이 두 그림 모두 해변과 수면, 얇은 가지와 거친 잎이 난 가지가 만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며 이러한 두 경계가 맞붙는 순간에 대한 심상은 재현적 이미지 사이에 들어간 추상적 형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리기의 방식을 달리 하며 진행되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대한 탐구이자 대상을 재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리는 행위가 구동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이러한 장치와 배경을 뒤로 하고, 정현두의 작업은 전시장 중간에 우뚝 서 있다. 붓질 자체가 삶의 감각을 실체화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는 그의 작업은 감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태어나는 작업의 특성으로 인해 종종 인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높이 150cm 바디스케일의 그림 두 점이 앞 뒤로 맞붙어 있는 작업을 선보인다. 최근 그림의 가로 폭을 좁히며 얇은 비율을 이용해 이미지 사이의 유기성을 실험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그림을 인물처럼 보이게 연출한다. 이번 전시에 맞춰 제작된 그의 회화 두 점 모두 류민지와 김진유의 작업물에서 영감을 받고 진행된 작업으로 이는 사람이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다는 점에서 인물과의 유사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앞뒤로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면적 형태로 자신의 다른 얼굴을 등 뒤로 숨길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그의 작업은 두 점이 결합된 하나로 전시장 앞쪽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이렇게 세명의 작업은 서로에게 누군가가 되고 어디가 되고 무엇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나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